
가을 달밤에 고국을 그리워하며
정 깊은 고국을 떠나 풍토 다른 이역에 원액이 되어 객관 고창에 고국을 그리워하는지 어느덧 10여 일 된지라, 생후로 객지 생화를 처음 당하는 어린 몸이 집을 나온 지 몇 해나 된 것 같아서 날마다 밤마다 모향의 정에 가슴을 울릴 제 누구라 위로해 줄 이도 없고 뉘게다 마음 붙일 곳도 없어 오직 냉랭한 6첩 방에 한없는 고적만이 어느덧 친한 벗이 되었습니다. 상엽이 져가는 중추의 어느 날, 추구의 비회에 잠 못 이루는 야반에 잠들은 거리로 지나 국수 장수의 불면서 가는 애련한 피리 소리에 뜨거운 정서가 빨갛게 열중되어 다다미 위에 쓰러진 듯이 누웠던 몸을 벌떡 일어나 창문을 드르륵 여니 아아 정답습니다. 교교월색이 마당에 가득하고나, 마당도 자고 검은 판장도 자고, 판장 이 너머 전주도 자고, 이웃집 지붕도 이미 꿈이 깊었는데 홀로 월광이 남몰래 비치려는 듯이 소리도 없이 낮같이 환하게 흘러 옛날 이야기에 듣는 꿈속 같은 나라를 이루어 있고, 그 고요한 꿈같은 거리를 국수 장사는 몽환곡 같은 피리를 불면서 어디든지 멀리 가고 말았습니다. 아아 감상의 가을. 달 밝은 밤, 달빛으로는 꿈속 거리로 꾀어내는 피리의 소리입니다. 한없는 적막은 옴 쑥 옴 쑥 내 몸을 에워싸서 지탱치 못할 고적과 제어치 못할 모향의 정에 견디지 못하여 이도 우객인 이 몸은 멀리 사라진 몽환의 곡을 뒤쫓듯 주인까지 잠들은 여관의 대문을 표현이 나섰습니다. 만뢰는 구적하여 세상이 죽은 듯하고, 일 윤의 고월은 천공에 높아 죽은 듯한 거리가 낮같이 밝은데 홀로 여관의 문을 나선 어린 내 몸은 달빛이 던져 준 땅 위에 영자를 이끌고 정처 방향도 없이 꿈속 거리를 헤맸습니다. 아아 우리 집에서는 지금들 주무시려나.. 수천리 타관, 서투른 땅에 쓸쓸히 헤매는 외로운 그림자여.... 어미 잃고 헤매어 우는 새끼 양같이 사랑하시는 부모와 정든 벗을 멀리 떠나 무엇 때문에 바람 싸늘한 곳에 외로운 가슴을 울리는가, 생각함에 벌써 더운 눈물이 두 눈에 그윽이 고이는데 산너머 구름 밖 머나먼 고국의 하늘로 날아를 가는가입니다. 검은 새의 우짖는 소리는 적막한 창공에 울리고 무엇을 탄식하는지, 휘-하고 불어오는 와세다 송림의 바람은 덧없는 내 마음을 싸가지고 행방도 모르게 몰려를 가고 있습니다.
첫가을
청명한 날 밤의 하늘은 깨끗한 푸른 유리처럼 깊게 곱게 개입니다. 동남쪽 장충단 저 너머로 떠오르는 달은 상긋한 푸른빛을 띠운 거울같이 맑고도 환하게 빛납니다. 이런 때 벌레 우는 뒤뜰이나 마루 끝에 앉아서 달구경하는 재미, 달구경에 지치면 방에 들어가서 산뜻하게 찬 방바닥에 몸을 대고 애독하는 책을 펴고 조용히 옛사람의 시를 읽습니다. 그러면 어느 틈에 방구석에서도 가여운 벌레가 울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여름내 피곤한 마음의 조갈을 추겨 주는 밤이슬같이 단 것입니다. 봄에 봄꽃 여름에 여름꽃이 있는 것과 같이 가을에도 가을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피는 꽃은 대게 쓸쓸스러운 풍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화, 과꽃, 무궁화, 달리아, 도라지꽃, 코스모스 모두 다 쓸쓸스럽게 피는 가을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코스모스처럼 가을 기분을 잘 나타내는 꽃은 없습니다. 헌칠하게 가늘게 길게 자란 줄기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좌우로 가는 가지가 나가고, 그 가는 가지가 뻗어 낙서 그 가느다란 끝마다 말쑥하고 어여쁜 꽃이 방긋방긋 피어났습니다. 가을날 저물어가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두 손길 마주 잡고 무언지 애원하는 처녀의 눈동자와 그 몸씨 같은 가지나, 꽃이나, 복성스럽고 귀여운 것이 가을 일기같이 산뜻하고, 쓸쓸하고, 애처롭게 가여워 보이는 순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열 칠판이나 되도록 크게 자라면서 탐스럽게 몸이 퉁퉁해지지 않고, 멀쑥하게 키만 자란 허리 가는 시골 색시는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울타리 뒤에서 얼굴 붉히는 촌색시 같은 가엽게 사랑스러운 꽃이었습니다. 코스모스를 사랑하는 고로 우리 집 마당에도 분에 심은 것이 지금 활짝 활짝 피어 있지마는 나는 언제든지 코스모스를 보면, 넓은 잔디 뜰, 시골길, 쓸쓸런 울타리 밑, 볕 잘 드는 시골 정거장 마당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스모스의 뿌리 있는 곳에서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우는 것도 생각하였습니다. 분에 심긴, 이것은 들이나 울 밑에 제대로 피어 있는 것에 비하여 코스모스다운 맛이, 반 이상이나 감해졌습니다. 그러나 흙냄새를 못 맡는 도회 생활에 고달 피는 쫓기는 모에는 이 분에 심긴 변변치 않은 것에도 오히려 향긋한 풀밭에 가을 맛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조그만 치의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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